놀고 먹기/영화/공연/전시/책

류시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향전 2025. 4. 20. 20:55

구차하게 의존하는 것, 시도와 모험을 가로막는 것을 제거해야만 낡은 삶을 뒤엎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전하게 살아가려고 마음먹는 순간 삶은 우리를 절벽으로 밀어뜨린다. 파도가 후려친다면, 그것은 새로운 삶을 살 때가 되었다는 메시지이다.

나는 지금 절벽으로 밀어뜨려야 할 어떤 암소를 가지고 있는가? 그 암소의 이름은 무엇인가? 내 삶이 의존하고 있는 안락하고 익숙한 것, 그래서 더 나아가지 못하게 나를 붙잡는 것은? 질문은 그 자체로 삶의 기술이 될 수 있다. 스스로 그 암소와 작별해야 한다. 삶이 더 넓어지고 더 자유로울 수 있도록.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은 당신이 알지 못하는 상처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서로에게 친절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삶을 여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 살아 있는 것은 아프다.

 

언어가 의식을 바꾸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것이 모국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세상은 우리가 그것을 인식하는 대로 존재한다. 무엇을 보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보는가, 무엇을 듣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듣는가, 무엇을 느끼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느끼는가가 우리의 삶을 만들어 나간다.

 

생의 한때에 자신이 캄캄한 암흑 속에 매장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어둠 속을 전력질주해도 빛이 보이지 않을 때가. 그러나 사실 그때 우리는 어둠의 층에 매장된 것이 아니라 파종된 것이다. 청각과 후각을 키우고 저 밑바닥으로 뿌리를 내려 계절이 되었을 때 꽃을 피우고 삶에 열릴 수 있도록. 세상이 자신을 매장시킨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을 파종으로 바꾸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매장이 아닌 파종을 받아들인다면 불행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다.

 

I like me best when I'm with you.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지는 이유는 단순히 그 사람이 좋아서만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 자신이 좋아지고 가장 나다워지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를 가장 잘 말해 주는 것은 나의 주의나 주장이 아니라 내가 은연중에 행하는 행동, 혹은 혼자 있을 때 하는 행위이다. 영혼과 의식의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나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행하는 작고 사소한 행동들이 내 몸의 리듬을 결정하고, 마음의 세계를 드러내 보이며, 의식을 특정한 차원과 연결시킨다.

나 자신이 실제로 누구인가는 감추거나 꾸미는 것이 불가능하다. 나는 부지불식간에 그것을 드러내며, 내가 주장하는 사상이나 철학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행동이 나에 대해 가장 잘 말해 준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고 어떤 사람인가? 그것이 가장 진실된 나의 모습에 가깝다.